'매뉴얼'은 내용이나 이유·사용법 따위를 설명한 글을 말한다. 일종의 안내서다. 그런데 이달 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 업무 매뉴얼’이 논란에 휩싸였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행되는 복수노조 허용에 관한 안내서인데,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 공통적인 지적은 복수노조 시행으로 예상되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사용자의 편의만 고려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경총 등 사용자단체의 해석보다 더 ‘사용자 친화적’인 노동부의 설명도 눈에 띈다.

다시 불거진 '노조법 시행시기' 논란

노동부 매뉴얼이 나온 뒤 가장 논란이 심한 부분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부칙 제4조(교섭 중인 노동조합에 관한 경과조치)에 대한 해석이다. 예컨대 올해 3월부터 한 사업장의 노사가 단체교섭을 시작했다고 치자. 노사는 6월30일까지 합의를 하지 못하고 교섭을 7월로 넘겼다. 그리고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7월1일 새 노조가 생겼다. 이럴 경우 3월부터 이미 사측과 교섭을 해 온 노조에게 교섭대표권이 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된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 매뉴얼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다만 노조법 부칙 제4조에는 "이 법 시행일 당시 단체교섭 중인 노동조합은 이 법에 따른 교섭대표노동조합으로 본다"고 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계와 경영계는 이미 교섭을 진행해 온 기존 노조에 교섭대표권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노조법 부칙의 ‘이 법 시행일’을 2011년 7월1일로 보는 것이다.

반면 노동부의 해석은 다르다. 새로 생긴 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향후 교섭대표권과 단체협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노조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통해 새로 생긴 노조가 있는지 공식 확인해야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논쟁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의 해석은 노조법 부칙의 ‘이 법 시행일’을 2010년 1월1일로 보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데 노동부의 해석대로라면 지난해 1월1일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1년6개월 동안 교섭을 진행한 사업장만 노조법 부칙의 적용을 받는 모순이 생긴다.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법학과)는 “노동부 해석대로 하면 굳이 부칙을 만든 의미가 없어진다”며 “무리한 해석을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상자기사 참조>

매뉴얼에 안내가 없다?

노동부 매뉴얼 내용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사업(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 업무 매뉴얼’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빼먹은 쟁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노동부 복수노조 매뉴얼에 따르면 사용자가 여러 노조 중 어느 한 노조의 개별교섭 동의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다른 노조와도 개별교섭을 할 수 있다. 동시에 노조원들의 이중가입도 허용된다. 그렇다면 개별교섭을 진행해 여러 개의 단체협약이 체결된 뒤 이중가입한 조합원에게 적용되는 단협은 무엇일까. 매뉴얼에는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 조합원 본인의 선택, 노조에 가입한 시기, 조합비 납부실적 또는 협약의 체결 선후, 특별 단체협약 우선 등의 기준에 따라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2. 노조법과 노동부 매뉴얼에 따르면 복수의 노조들이 쟁의행위를 하려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전체 노조원들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노사가 합의한 뒤 합의안에 대한 인준투표를 가결하는 기준이 매뉴얼에 언급돼 있지 않다. 물론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인준투표는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 인준투표가 교섭대표권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따라서 굳이 투표를 거치지 않고 교섭대표가 합의서에 서명을 하면 절차는 마무리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 사업장에서 조합원들의 인준을 받는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있고, 복수노조가 시행된 뒤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찬반투표 행위를 생략하려는 사용자와 강행하려는 노조 간 갈등, 또는 노노 갈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조합원 인준투표는 법으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며 “굳이 투표를 한다면 복수노조 전체 조합원 과반수가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 노조가 교섭대표단 구성이나 과반수교섭대표 구성에 실패했을 때, 또는 자율적으로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릴 수 없을 때 노동위원회가 공동교섭대표단을 결정한다. 노동위원회가 결정하는 공동교섭대표단은 10명 이내로 구성된다. 반면에 노조들이 자율적으로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릴 경우 인원에 제한이 없다. 노조 간 경쟁 끝에 과도한 인원이 공동교섭대표단에 포함되고, 사용자가 이를 이유로 교섭을 거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4. 노조법에 따라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고용형태·교섭관행 등을 이유로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다. 단 노동위원회의 결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현재 항공사에서 조종사노조와 다른 직원노조의 교섭이 별도로 진행되는 것처럼 노동위원회 결정에 따라 허용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분리된 교섭단위를 다시 통합하는 절차에 대해서는 노조법과 노동부 매뉴얼에 별다른 설명이 없다.

기업보다 교섭비용 걱정 많이

노동계는 노동부 매뉴얼에 대해 “교섭비용 최소화에만 매몰돼 사용자들의 편의만 봐주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 기준을 사업장보다는 사업(법인)에 초점을 맞추거나, 쟁의행위 찬반투표시 전체 복수노조원들의 과반수 찬성을 받도록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내부적으로 내린 지침보다 더 사용자 편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부 매뉴얼에 따르면 노조가 개별교섭을 하려면 교섭요구 노조 명단이 확정된 날부터 14일 이내에 사용자와 합의해야 한다. 이 기간을 넘기게 되면 노사가 합의해도 개별교섭은 불가능하다는 게 노동부의 해석이다. 노조법에 나온 관련 조항이 노사 합의사항이 아니라 강행규정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노사자율의 여지를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특히 개별교섭을 최대한 지양하고 있는 한국경총의 해석이 노동부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돼 흥미롭다. 경총은 회원사에 배포한 안내서에서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면 14일의 기간이 지나서도 노사가 합의해 개별교섭을 진행한다면 법 위반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4일이라는 기간은 노조가 사용자에게 개별교섭을 요구해 동의받을 수 있는 기간일 뿐인데, 이 기간을 넘겨 합의했다고 해서 무효로 볼 수는 없다는 해석이다.

노조법이나 노동부 매뉴얼 내용 중 공동교섭대표단에 참여하는 노조의 자격을 전체 노조원의 10% 이상을 확보한 노조로 제한한 것에 대해서는 위헌 논란까지 제기된다.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단을 구성하는 단계에는 노조원 규모와 무관하게 전체 노조에 기회를 주기 때문에 교섭창구 단일화 마지막 단계인 공동대표단 구성 과정에서 소수노조를 제외해도 위헌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 노동부 주장이다.

하지만 이승욱 교수는 “불필요한 규정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위헌 논쟁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용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법무법인에서도 위헌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철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참터)는 “노동부 매뉴얼을 보면 ‘노동부 친화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며 “노사 자치원칙이나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정편의만 고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타임오프에 발목 잡힌 ‘복수노조 시행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부칙 제4조(교섭 중인 노동조합에 관한 경과조치)에 대한 노동부의 해석은 지난해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시행을 앞두고 일었던 논쟁과 맞닿아 있다. 노조법 부칙 제3조(단체협약에 관한 경과조치)에 따르면 노조 전임자임금 지급금지가 시행되기 전에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단협 유효기간까지 전임자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계는 법 시행의 기준을 전임자임금 금지조항이 시행된 2010년 7월1일로 보는 반면에 정부와 경영계는 개정 노조법이 시행된 2010년 1월1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해 1월1일 기준으로 전임자임금 금지조항이 길게는 2년6개월이나 유예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노정은 날카롭게 대립했다. 결국 국회 입법조사처가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복수노조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동부는 부칙 제4조 시행일을 지난해 1월1일로 봤고, 노동계는 올해 7월1일로 보고 있다. 경영계는 타임오프 논쟁 때와는 달리 노동계와 입장을 함께하고 있다.
신생노조 출현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기존 노조나 경영계 입장에서는 기존 노조의 교섭대표권 인정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노동부는 신생노조의 권리 확보를 위해서라도 법 시행일을 1월1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부 해석을 따르면 노사교섭을 1년6개월 이상 진행한 노조만 부칙 제4조를 적용받게 된다.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는 셈이다. 노동부가 타임오프 관련 부칙에 대한 해석을 복수노조에 대한 해석까지 적용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는 “지난해 초 모순되는 여러 부칙 조항이 포함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노동부가 무리한 해석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의 한 산별연맹 관계자는 “신생노조의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노동부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타임오프 시행 때부터 무리하게 법 해석을 내리면서 복수노조 시행까지 뒤죽박죽이 됐다”고 비난했다. 김학태 기자